세계사

중세 시대와 근대 시대

샤이닝 이네스 2022. 5. 5. 06:36

 

인류는 글이 없었던 선사 시대를 지나, 고대 시대로 접어 들었으며 각자 자신이 위치한 곳에서 문명을 꽃피운다.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 등 전 세계에서 수 많은 문명이 피고 지는 시기가 지나갔다. 그리고 중세에 이르러 인류 문명의 발달은 더더욱 꽃피게 된다. 

 

중세 시대의 정의 

역사학세어 중세라는 용어는 르네상스 시기를 보내고 있는 유럽인들이 그 자신들과 고대 사이의 역사를 인식하는 암흑기로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었다. 서양 역사관에 입각한 이러한 표현은 오늘 전 세계에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중세는 여전히 전근대 시대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동양 역사에서는 중세를 서양의 기준에 맞춰 구분하는 것이 서구 중심의 역사 분류 체계를 지나치게 기계적이고 천편일률적으로 따르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전 세계에서 중세는 각각 다른 시기를 가리킨다. 유럽의 중세는 어느 순간 갑자기 닥친 것이 아니라 점진적인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발생되었다. 중세 유럽의 형성에 영향을 준 사건으로는 훈족의 침입, 콘스탄티노스 1세의 막강했던 기독교의 권위, 프랑크 왕국의 성립, 게르만족의 이동 등이 있다. 대부분의 역사 학자들은 유럽의 중세를 로마제국의 붕괴 시점으로 생각한다. 

 

르네상스

유럽의 르네상스는 14세기에 시작되었다. 이는 그리스와 로마 세계에 존재했던 과학적인 지식의 재발견과 당시 유럽의 경제와 사회 발전에 의해 가능했다. 그러나 르네상스는 호기심의 문화를 만들어냈고, 이는 휴머니즘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과학 혁명이다. 르네상스는 그 당시 의학, 예술, 건축, 기술 등 무수한 분야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그 때 당시 만들어진 르네상스의 유물들이 오늘의 역사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슬람 제국 

이슬람의 확산은 중세 아랍권의 가장 큰 특징이다. 메카-메디나를 중심으로 무함마드에 의해 아라비아 반도로 전해진 이슬람은 632년 무함마드가 사망할 때 이미 아라비아 반도 전 지역에 퍼져있었다. 그 이후 이슬람 제국은 661년 우마미야 왕조와 750년 아바스 왕조를 지나면서 중동, 중앙아시아, 북아프리카에 이르는 거대한 제국으로 발전하였다.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서 발칸반도와 스페인까지 세력을 넓히게 되면서 서양의 기독교 성지 사이의 영토 분쟁이 일어나게 된다. 이 전쟁은 그리스 시대의 지식이 유럽에 들어오는 르네상스의 계기가 되었다. 

 

동아시아

중국,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 3국은 예로부터 교류와 갈등을 겪으며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세 나라 모두 자국의 역사를 우선시 하고 있어, 동아시아 삼국 공통의 역사 인식을 이야기 하고 있지는 않는다. 중국 역사에서 중세는 당나라 말부터 명나라 말까지이며, 한국에서는 고려시대를 중세 시대로 본다. 일본에서는 가마쿠라 시대부터 무로마치바쿠 시대까지의 기간을 중세 시대로 본다. 

 

근대 시대 

근대의 분류는 다양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서양의 근대는 17세기 이후 구 체제가 붕괴되고 산업혁명을 통해 민족주의, 자본주의, 제국주의가 형성된 것이 시대의 특징이다. 한면 시민 사회의 형성과 민주주의의 발전이 현대 시대의 특징이라고 본다. 그러나 서구 근대적 특성을 제국주의로 기계적으로 대체한 것은 각 시대마다의 정권이 얼마나 이러한 기준에 도달했는가이다. 근대 경제 발전과 민주주의를 경제 성장의 대립적인 개념으로 분리한 것이 현대화를 이끌어냈다는 견해가 있다. 그리고 현대 사회의 세계사적 흐름의 관련하여 식민지 근대 시대를 형성하기도 한다. 한편 이러한 기준과는 달리 근세의 개념은 중세 이후의 역사를 구분하기 위해 때때로 사용한다. 한국의 경우에 조선시대를 근세 시대로 본다. 일본의 경우에는 16세기 이후부터 19세기 메이지 시대 이전까지를 근대 시대로 분류한다. 아즈치, 모모야마 시대 및 에도 시대도 근세에 해당한다. 

 

서양의 초기 근대 세계

15세기 이후 영국의 산업 발전, 고전 경제의 확립, 그리고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산업 혁명은 서구 근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서양의 지리적 인식의 확대와 역공 시대 이후 미국의 식민지와 인도가 유럽의 경제 시장에 편입 되면서 제국주의 확대의 시작점이 되었다. 한편 프랑스에서 시작된 프랑스 혁명으로 말미암아 구 체제가 붕괴되고 국민 국가가 들어서게 되었다. 프랑스 혁명과 영국의 명예 혁명 이후에 유럽에서 민주적인 정치 체제가 시작되게 되었다. 

 

제국주의

산업혁명 이후 자본이 늘어나고, 자본주의가 발전하게 되면서 서강은 자신의 나라 이외에 눈을 돌리게 된다. 이러한 자본주의의 발달은 세계 각지의 식민지화로 나타나게 된다. 19세기까지 대부분의 나라들, 아프리카, 아시아, 인도 등은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포르투갈, 스페인 등 소위 유럽 강대국들의 의해 짓밟히고 분열되게 된다. 이 제국주의의 큰 축을 담당했던 것이 바로 종교이다. 종교가 서양의 제국주의가 동아시아로 뻗어나가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 프랑스는 선교사 보호와 선교 자유에 관심이 많았다. 프랑스는 가톨릭의 영향력을 원하지는 않았지만, 식민지와 선교사들은 국가의 이익과 경제적인 소득을 위해서 가톨릭 선교사를 지원하고 보호하는 정책을 택했다. 그리고 이러한 식민지 해외 제국주의 정책을 펼쳤던 7개의 서유럽 강대국의 금융 파워 뒤에는 로스차일드 가문 같은 유럽 속에 유대인 재벌가들이 있었다. 

 

 

제 1차 세계대전 

제국주의와 식민지배, 군국주의의 확장으로 서구 열방은 넘쳐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였고, 이는 인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은 제1차 세계대전으로 남게 되었다. 사라예보 사태로 인해 발발하게 된 제1차 세계대전은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범독일주의, 범슬라브주의 등 민족주의로 인한 전 세계적인 전쟁이 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전 세계에서 동시에 전쟁, 전면전, 대량학살, 참호전 등이 일어났다. 대량 학살 기간에는 죄 없는 민간인들이 무수하게 학살을 당하는 끔찍한 일들이 자행되었다. 전쟁 중에 탱크와 독가스와 같은 새로운 무기들이 발명되었다. 이전 시대의 강대국이었던 영국, 해가 지지않는 나라였던 영국은 결국 강대국의 지위를 내주게 되었다. 프랑스 또한 미국에 강대국의 패권을 넘겨주게 되었다. 전쟁의 결과로 인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붕괴되며 역사 속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독일은 바이마르 공화국으로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소비에트 연방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고, 그 결과 소비에트 연방, 즉 소련이 세워지게 되었다. 그 후 20세기 후반이 될 때까지 소련은 서구 자본주의 체제와 양립하는 양대 세력 중 하나로 존재했었다. 

 

대공황 Great Depression

1929년 10월 24일 뉴욕 증시가 붕괴된 검은 목요일 이후 자본주의는 그 탄생 이후 세계에서 전례없는 공황에 직면하게 되었다. 미국에서는 대공황을 극복하기 위해 케인즈주의와 함께 최대 48%까지 관세를 인상하는 스무트할리 관세법이 통과 되었다. 결과적으로 자유방임주의에 바탕을 둔 자본주의 경제를 대체하면서 케인즈의 이론에 따른 뉴딜 정책과 같은 변형된 자본주의가 나타나게 되었다. 대공황으로 인하여 전 세계 경제는 후퇴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혼돈 속에서 독일과 일본은 다시 힘을 되찾고, 강대국의 지위를 얻기 위해서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에 메달리게 된 결과 제2차 세계 대전이 발생하게 되었다. 

 

선사 시대부터 고대를 지나 중세까지 이어졌던 인류의 문명은 문명이 발달함과 함께 인류의 욕심도 커져만 갔다. 끝없는 야욕으로 인해 인류 역사에 잊을 수 없는 상처인 제1차 세계대전을 남긴다.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지만, 인류의 욕심은 끝이 없었기에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만다. 

 

출처 : 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