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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에 이르러 중국의 어떻게 발전해왔는지를 알아보았습니다. 근세 중국은 명나라가 다스리는 나라였습니다. 그 가운데 중국의 사회와 경제와 해외 이익 알아보겠습니다. 또한 명나라가 어떻게 쇠퇴하게 되었고 그 뒤를 이어 만주족이 청나라를 세우는 과정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근세 중국의 해외 이익
국가의 영광을 위해 중국인들은 남중국해와 인도양을 가로질러 인상적인 정크선을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1403년부터 1433년까지 영락제는 중국에서 온 이슬람 환관인 제독 정허가 이끄는 원정대를 파견했습니다. 수백명의 병사와 동물 물품을 싣고 동남아 페르시아 아라비아 남부 동아프리카까지 중국의 힘을 과시한 중국군. 중국군의 기량은 당시 유럽인들을 능가했고 이 원정이 끝나지 않았다면 세계 경제는 지금과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1433년 중국 정부는 해군 비용이 불필요한 비용이라고 결정했습니다. 중국 해군은 서서히 해체되었고 내륙 개혁과 군사 방어에 집중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목민으로부터 중국을 보호하고 그에 따라 중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중굮의 오랜 우선 순위였습니다. 중국 해군에 대한 증가하는 한계는 나중에 바다에 의한 외국의 침략에 취약하게 만들 것이었습니다. 불가피하게 서양인들은 주로 1582년에 본토에 도착한 예수회 선교사들을 중심으로 중국 동부 해안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먼저 사회 계층의 최상위를 개종시키려고 이후에 하급 계증이 개종하도록 허용함으로써 중국인을 기독교로 개종 시키려고 시도했습니다. 더 많은 지원을 받기 위해 많은 예수회 회원들은 중국 복장 관습 언어를 익히고 채택했습니다. 일부 중국 학자들은 특정 서양의 가르침 특히 서양 기술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1580년가지 마테오 리치와 아담 샬과 같은 예수회 학자들은 유럽 시계와 향상된 달력 및 대표 그리고 정확한 일식 예측과 같은 기술 발전으로 중국 엘리트들을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상류층은 기독교로 개종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이 야만인이라고 부르는 서구인을 의심했고 서구의 교정에 의해 그들이 받은 당혹감에 대해 분개하기까지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수의 예수회 학자들이 황제와 그의 조언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궁정에 남아있었습니다.
쇠퇴
1500년대 말에 황제에게 많은 권한을 주던 극도로 중앙집권화된 정부는 무능한 통치자들이 그 망토를 차지하면서 실패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약한 통치자들과 함께 쇠퇴를 걷기 시작하면서 점점 부패한 관리자들이 나타났습니다. 다시 한 번 공공 프로젝트는 관료의 방치로 인해 황폐화되었고 농민을 뒤흔든 홍수 가뭄 및 기근을 초래했습니다. 기근은 곧 너무 심해져서 일부 농민들은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녀를 노예로 팔거나 나무 껍질이나 거위 배설물 또는 다른 사람을 먹는데 의존했습니다. 많은 지주들은 절망적인 농부들이 일하고 착취할 수 있는 대규모 토지를 건설함으로써 상황을 남용했습니다. 그 결과 이 농부들 중 많은 수가 도주하였고 도적질과 공개적인 반란에 가담하거나 의지하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이전에 보았던 중국의 일반적인 왕조의 쇠퇴와 증가하는 외부 위협과 일치했습니다. 16세기 중반 일본과 중국의 해적들이 남해안을 습격하기 시작했고 관료와 군대들도 이들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북부 만주족의 위협도 계속 커져만 갔습니다. 만주족은 17세기 초에 누르하치라는 지도자가 그들을 8기로 통합합니다. 이 때 만주족은 이미 중국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큰 국가였습니다. 만주족은 특히 관료제를 따라는 중국 관습을 많이 차용하고 채택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주족은 여전히 중국인으로 남아있었습니다. 1644년 중국의 행정과 관리 체계가 너무 약해지면서 16대 마지막 황제인 총전 황제는 적들이 자금성을 침략할 때까지 지역 반대자들에 의한 계속되는 반란의 심각성에 대응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는 곧 황실 정원에서 목을 매었습니다. 충성파 명나라 관리가 새로운 왕조를 무너뜨리기 위해 만주족의 지원을 요청할 때까지 짧은 시간 동안 순 왕조가 존재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순나라는 1년만에 멸망하였고 만주족은 이제 만리장성 안에 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틈타 만주족은 중국의 수도인 베이징으로 진군하였습니다. 그리고 20년 이내에 중국 전역이 만주족에 속하게 되고 만주족이 세운 나라인 청나라가 세워지게 됩니다.
일본 도쿠가와 또는 에도 시대
전국시대를 이은 근세 일본에서는 아즈치모모야마 시대에 오다 노부나가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중앙 정부가 크게 재건되었습니다. 1600년의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중앙 권력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게 넘어갔고 이 과정을 끝내고 1603년에 쇼군의 칭호를 받게 되었습니다. 일본의 도쿠가와 시대 즉 에도 사회는 그 이전의 막부와 달리 원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확립한 엄격한 계급 위계에 기초했습니다. 봉건 영주인 다이묘가 맨 위에 계급이었고 그 아래 계급인 무사 계급인 사무라이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에 농부와 장인 및 상인이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에도 시대는 사코쿠 정책을 제외하고는 외국인에게 엄격하게 폐쇄되었습니다. 2세기 동안 고립된 상태로 지내다보니 문맹률이 높아지게 되었습니다. 나라의 일부 지역 특히 작은 지역에서는 다이묘가 사무라이로 훈련될 수 있고 사무라이가 지역 영주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다이묘와 사무라이가 거의 동일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사회 계층 시스템의 대체로 유연하지 않은 특성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파괴적인 힘을 촉발시켰습니다. 농민에 대한 세금인플레이션이나 화폐 가치의 기타 변화를 고려하지 않은 고정 금액으로 설정되었습니다. 그 결과 사무라이 지주들이 징수한 세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떨어졌습니다. 이것은 종종 고귀하지만 가난한 사무라이와 부유한 농민 사이에 수 많은 대립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어느 것도 외국 세력이 도착할 때까지 기존 질서에 진지하게 도전할 만큼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판명되지는 않았습니다.
인도
인도 아대륙에서는 18세기 초 무굴 제국이 인도 대부분을 통치했습니다. 샤 자한 황제와 그의 아들인 아우랗제브의 이슬람 샤리아가 통치하는 동안 제국은 건축 및 경제력 절정에 이르렀고 세계 GDP의 25% 이상을 차지하는 동안 세계 최대 경제 강국이 되었으며 초기 산업화를 알렸습니다. 네이더 샤의 무굴 제국 침공이나 플래씨 전투 그리고 부사르 전투 및 장기간의 앵글로마이소어 전쟁과 같은 주요 사건에 이어 대부분의 남아시아는 대영 제국의 식민지화 및 마이소어 전쟁과 같은 주요 사건에 있어 대부분의 남아시아는 대영 제국의 식민지화 및 통치를 받아들여 왕조를 수립해버렸습니다.
고전시대는 무굴 제국의 황제 아우랑제브의 죽음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왕조는 또 다른 150년 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제국은 여러 지역을 연결하는 고도로 중앙집권적인 행정으로 특징을 삼을 수 있었습니다. 무굴의 가장 눈에 띄는 유산인 무굴의 모든 중요한 기념물은 인도 아대륙에서 페리스아 문화의 영향이 확장되어 뛰어난 문학적 예술적 건축적 결과를 낳은 이 시기로 거슬러 올라갑시다. 마라타 제국은 현재 인도의 남서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라타 제국의 수상인 페슈와 스의 총치하에 크게 확정되었습니다. 1761년 마라타군은 아프가니스탄의 하으다마드 샤 두라니왕과의 제3차 파니파트 전투해서 패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 이는 제국의 확장을 중단 시켰고 제국은 마라타 국가들의 연합으로 문할이 되었습니다
중국은 해외 선교사와 실크로드를 통해서 많은 외국 문물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여러가지 기술들이 전래되었고 기독교도 전파되어 기독교로 개종하는 이들 중 계급에 대한 생각을 버리지 못한 인원들도 많았습니다. 일본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권력을 쥐게 되면서 에도시대 혹은 도쿠가와의 시대가 왔음을 선포합니다. 도쿠가와 시대는 엄격한 위계질서가 특징이었습니다. 그리고 인도의 무굴 제국의 힘과 확장력을 보이게 됩니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기에 무굴 제국이 쇠퇴하고 또 다른 정권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출처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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